이집트 영화는 오랜 내전과 경제 위기, 젊은층의 절망 속에서 ‘떠나는 자’들의 이야기를 자주 다룹니다. 이주와 탈출, 국경과 망명이라는 주제는 단지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삶의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됩니다.
‘떠나야만 하는 이유’의 사회적 배경과 인물 구축
이집트 영화에서 이주 혹은 탈출을 선택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구조적 억압과 계급적 한계에 직면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무언가를 좇아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더는 살 수 없어서’ 떠나는 이들입니다. 대표적인 영화로 『Clash (2016)』를 들 수 있습니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 체포된 인물들이 경찰차 안에서 갈등과 연대를 겪는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이주를 다루지는 않지만, ‘도망칠 수 없는 현실’에 갇힌 인물들의 심리를 강렬하게 포착합니다. 그들은 외부의 국경이 아니라, 내면의 경계에 봉착해 있으며, 결국 많은 이들이 그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집트 영화는 종종 이런 인물들을 교육을 받지 못한 청년,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등으로 설정하며,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이들이 ‘탈출’을 꿈꾼다는 구조적 현실을 드러냅니다. 이들은 합법적 이민이 불가능하거나, 국가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법’이라는 경로로 국경을 넘으려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절망과 위기, 또 다른 억압을 통해 이집트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서사는 단순히 이동의 로드무비가 아니라, 정체성과 생존의 문제를 다루는 생생한 인간 드라마로 발전하게 됩니다.
국경과 바다의 상징: 공간과 생존 사이의 영화적 경계
이집트 영화에서 ‘국경’은 단순한 경계선이 아니라, 생존과 죽음, 선택과 단절의 상징으로 표현됩니다. 특히 유럽으로 향하는 불법 이민의 여정에서 지중해를 건너는 장면은 자주 등장하며, 이 바다는 공간의 이동이라기보다 존재의 시험대로 연출됩니다. 『Exterior/Night (2018)』에서는 밤을 배경으로 도시의 경계를 넘는 인물들의 방황이 그려지며, 국경 없는 탈주의 내면적 풍경이 묘사됩니다. 바다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국경이 허구적이며, 개인의 욕망과 맞물려 있음이 강하게 암시됩니다. 또 다른 사례인 다큐멘터리 『Dreams of the City (2020)』는 실제 이민 희망자들의 인터뷰와 자료 화면을 결합하여, 국경이라는 개념이 단지 물리적이 아닌, 심리적·법적·정치적 구조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이집트 영화에서 국경은 종종 군사적 철책, 철조망, 어두운 바닷길, 사막의 길 없는 길로 형상화되며, 인물의 얼굴과 대비되는 공간적 상징으로 활용됩니다. 이는 국경이 단지 이동의 통로가 아닌, 국가의 폭력과 세계 질서 속 위계의 표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민을 선택한 인물들이 맞이하는 새로운 억압과 차별까지도 서사의 일부로 포함됩니다. 결국 국경은 이집트 영화 속에서 ‘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넘을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장치로 기능하며, 관객에게 현재의 세계질서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망명 이후의 삶: 정체성과 소속의 해체 혹은 재구성
이집트 영화는 이주와 탈출의 성공 이후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는 결코 낙원이 아닙니다. 망명지에서의 삶은 정체성의 위기와 소속감의 붕괴, 그리고 문화적 충돌이라는 또 다른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Amr Salama』 감독의 『Sheikh Jackson (2017)』은 명확한 이주 서사를 다루는 작품은 아니지만, 서구 문화와 이슬람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의 내면을 다루며, 이민자 정체성의 심리적 갈등을 잘 보여줍니다. 비록 물리적 국경을 넘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문화적 망명, 내면의 탈출이라는 관점에서 이주 서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디아스포라 이집트인 감독들이 만든 작품들—예컨대 『In the Last Days of the City』(2016)—은 떠난 자의 시선으로 고향을 바라보는 복합적 감정을 담아내며, 이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망명 이후 인물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하는지를 다시 묻게 되고, 이는 종종 침묵, 분열, 무기력, 혹은 새 정체성의 구성으로 이어집니다. 이집트 영화는 망명을 해도 끝나지 않는 방황을 통해, **이주를 단순히 ‘나가는 일’이 아니라, 끝없이 돌아오고 재구성되는 정체성의 여정**으로 확장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국경과 삶, 세계의 질서를 재구성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