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영화에서 ‘몸’은 단지 움직이는 육체를 넘어, 권력과 억압, 저항과 표현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춤, 노동, 폭력, 성, 침묵 속 몸짓은 시각적으로 이집트 사회의 긴장 구조를 드러내며, 정치적 언어로 작용합니다.
춤과 성의 시선: 쾌락의 대상화 vs 주체적 표현
이집트 영화에서 ‘춤추는 몸’은 오랜 시간 관능과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특히 벨리댄스(라끄스 샤르키) 장면은 대중적 오락의 요소이자,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주요 코드로 기능했습니다. 전통적인 남성 중심 영화에서는 여성 댄서는 종종 유혹, 불행, 또는 타락의 서사와 연결되며, 그녀의 몸은 관객의 쾌락과 불안을 동시에 자극합니다. 예를 들어 『The Dancer (2016)』는 유명 댄서 페르두스의 삶을 재현하면서, 사회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감시하고 통제하는지를 드러냅니다. 영화 속 그녀의 춤은 단지 예술이 아닌, 생존과 욕망, 자율성과 통제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평가받는 행위입니다. 반면, 최근 여성 감독들이 연출한 영화에서는 춤이 더 이상 남성의 시선에 포획된 오락 요소가 아니라, 여성 주체의 감정과 내면을 드러내는 신체적 언어로 재구성됩니다. 몸은 욕망의 객체가 아니라 감정의 주체가 되고, 카메라는 그 시선을 따라 여성의 움직임과 감정에 밀착합니다. 이는 로라 멀비의 페미니즘 영화이론에서 말하는 ‘여성 주체의 시선 전복’이 이집트 영화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처럼 춤은 이집트 영화 속에서 쾌락과 금기의 경계를 넘나들며, 권력 구조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정치적 행위가 됩니다.
노동하는 몸과 계급의 시각화: 무거운 몸, 지워진 노동
이집트 영화는 빈곤과 계급의 문제를 다룰 때, 자주 육체노동자의 몸을 클로즈업합니다. 이는 신체의 피로와 반복되는 움직임, 더러움, 구부정한 자세 등을 통해 계급적 현실을 시각화하는 전략입니다. 대표적으로 『Cairo 678 (2010)』에서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여성들의 군중 속 몸짓, 버스 안의 신체 접촉, 군중 사이에 끼인 여성의 몸이 어떻게 폭력과 통제의 대상이 되는지를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이 영화에서 여성 노동자의 몸은 일터에서의 피로뿐 아니라, 대중 교통 속에서도 사회적 구조의 피해자가 됩니다. 또 다른 예로 『Nawara (2015)』는 상류층 저택을 청소하는 가사노동자의 몸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하며, 그녀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 물통을 드는 장면, 손발이 닳도록 일하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그녀의 계급을 ‘몸으로’ 말하게 하는 미장센이며, 말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발언으로 기능합니다. 이집트 영화에서 노동은 단지 직업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신체가 위치하는 방식이며, 계급은 말이나 패션보다 오히려 움직임, 자세, 몸의 피로도로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와 같은 ‘노동하는 몸’의 반복은 종종 특정 계층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지워지고 소외되는지를 시각적으로 고발하는 역할을 하며, 관객은 말없이 몸으로 말하는 인물들을 통해 시스템의 폭력을 직관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폭력과 억압의 몸: 침묵, 통증, 그리고 저항의 몸짓
이집트 영화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 중 다수는, 인물들이 말하지 못하고 ‘몸으로 말하는 순간’들입니다. 고문, 구타, 강간, 감금 등의 폭력적 신체 장면은 단지 자극적인 연출이 아니라, 억압받는 몸이 말할 수 없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이 됩니다. 『The Yacoubian Building (2006)』에서는 감옥에서의 성폭행 장면이 국가 권력에 의한 신체 통제의 극단을 보여주며, 육체가 어떻게 정치적 억압의 도구가 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반면, 이집트 영화는 이러한 폭력을 반드시 폭발적인 복수나 반란으로 연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침묵하거나, 신체 일부를 포기하거나, 외부와 단절하는 방식으로 저항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파농이나 아그암벤이 말하는 ‘비정치적 침묵’ 속의 저항과 연결되며, 신체가 말 대신 감정과 분노를 저장하는 그릇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Asmaa (2011)』의 주인공은 HIV 감염자라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하고, 자신의 몸이 사회에서 투명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습니다. 그 몸은 더 이상 병든 것이 아니라, 사회가 혐오하는 대상을 투사한 표면이며, 그녀의 침묵은 오히려 더 큰 발언이 됩니다. 이집트 영화에서 신체는 감금되고 고립되며 상처입는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침묵과 고통을 통해 무언의 저항을 조직하는 매체입니다. 몸은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공간이자, 정치적 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감각적 진실의 증거로 작동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