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아랍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 산업을 지닌 국가이지만, 여성 감독의 존재는 오랫동안 주변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십 년간 여성 창작자들이 페미니즘 영화 언어를 구축하며, 이집트 시네마의 서사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집트 여성 감독의 등장과 영화 속 시선 구조의 전환
이집트 영화계는 역사적으로 남성 중심의 시선(male gaze)이 지배해 온 산업입니다. 여성은 종종 남성 서사의 보조적 존재, 로맨스의 대상, 혹은 도덕적 전환점으로 등장했으며,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내면은 드러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아테프 엘-타 이브, 모하메드 칸 등 사회비판적 남성 감독들의 작업과 병행하여, 여성 감독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마리안 카리(Amr Salama와 협업)와 하마미다 엘호세이니(Hamida El Hosseiny), 그리고 다큐멘터리계의 타하니 라시드(Tahani Rached)가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시선 구조를 전복하며, 여성 인물이 중심 서사를 주도하고, 내면의 심리 변화와 사회적 억압을 주체적 시점에서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페미니즘 영화 이론에서 말하는 ‘counter-gaze(대항 시선)’의 개념은 이집트 영화 속 여성 감독의 미장센 구성, 카메라 위치, 시점 쇼트 등을 통해 구현되며, 이는 단지 스토리의 문제가 아니라 시청자의 인지 방식 자체를 전환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여성 캐릭터가 타자의 대상이 아닌, 카메라의 주체로서 욕망하고, 판단하며, 서사를 끌고 가는 이러한 변화는 이집트 시네마에 깊은 균열을 일으키고 있으며, 젠더 권력 구조의 시각적 해체를 가능케 합니다.
페미니즘 주제의 확장: 몸, 일상, 말할 수 없는 것의 시각화
이집트 여성 감독들은 단지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는 데서 그치지 않고, 페미니즘의 핵심 의제인 몸의 통제, 재생산 권리, 사회적 침묵과 강요된 침묵에 대한 문제를 직면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마리암 아부 오우프(Maryam Abu Ouf)의 『One-Zero (2009)』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2008년 이집트 카이로를 배경으로,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의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선택의 문제를 병렬 서사로 풀어냅니다. 낙태, 종교 갈등, 이혼의 어려움, 성적 주체성의 상실 등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구조적 침묵을 카메라는 끝까지 따라가며, ‘말해지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집트 페미니즘 영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억압의 현장을 다루면서도 피해자 서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물들은 분노, 저항, 침묵, 이탈, 유머 등 다양한 감정선을 통해 억압을 다층적으로 표현하며, 이는 페미니즘 이론에서 말하는 ‘다양한 여성성의 재현’과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일상의 반복적 행위—청소, 요리, 침묵 속 대화—와 같은 장면은 여성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노동’ 속에서 어떻게 소멸되고 다시 생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적 언어로 활용됩니다. 이런 접근은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과도 연결되며, 제3세계 여성의 목소리를 중심에 놓는 정치적 시도로서 평가받습니다.
이집트 페미니즘 시네마의 한계와 확장 가능성
이집트에서 페미니즘 영화는 분명히 진보적인 흐름을 형성해왔지만, 동시에 여전히 여러 한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산업 구조 자체의 남성 중심성입니다. 제작비 확보, 배급, 영화제 상영 등에서 여성 감독들은 지속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으며, 이는 페미니즘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을 제한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 수용성입니다. 이집트의 보수적 문화 및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페미니즘 서사는 종종 ‘서구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거나, 가족 해체와 성적 자유화를 조장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Excuse My French (2014)』나 『Asmaa (2011)』처럼 성소수자, HIV 환자, 비혼 여성 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상영 금지 또는 제한 판정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과 국제 공동 제작, 여성 영화제의 활성화는 이집트 여성 감독들에게 새로운 창작 공간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넷플릭스, Watch It, YouTube Originals 등은 제작·배급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검열을 피하면서도 글로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또한 젊은 세대 관객 사이에서는 젠더 감수성과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되면서, 페미니즘 영화를 단지 ‘여성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서사를 다시 구성하는 대안적 언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여성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는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관객의 인식에 균열을 내고 있으며, 이는 단지 영화계에 국한되지 않고, 아랍 사회 전반의 문화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